김원중 / 출판사 휴머니스트출판그룹

'공자왈', '맹자왈'이 주는 어감은 고리타분 자체다. 조선 시대 궁중의 왕과 세자를 위한 학문적 행사에 맹자의 문구를 해석하는 문제에 대하여 치열히 논했다는 기록을 보며 사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맹자에 관한 많은 해설서가 존재하지만 어떤 글이든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상식을 논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맹자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키면 매우 급진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맹자는 중국 왕조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맹자에 관한 책을 일본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가 춘추시대라면 맹자는 이후 전국 시대에 활동했다. 춘추시대가 강대국에 의한 질서가 봉건제로 굳혀가는 과장이었다면 전국 시대는 패권이 나눠 서로서로 잡아먹는 혼돈의 시대다.

당연히 나라마다 군사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인재 등용에 적극적인 시절이었다. 능력이 있다면 여러 나라에서 자기 나라로 올 것을 요청했고 이런 과정에서 맹자는 양 혜왕의 부름을 받고 그의 나라에 도착하여 첫 대면을 하는 것이 맹자의 시작이다.

1장의 내용은 간단하다. 양 혜왕이 "노인장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당신을 위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여 내 나라로 모셨는데 어떤 이득이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당시 맹자가 살던 산동성과 양 혜왕이 살던 곳은 중국에서 거의 끝에서 끝이다. 수레를 타고 가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의 길이었으며 맹자를 위하여 긴 여정의 여행 경비를 모두 지불한 혜왕으로서 당연히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맹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금전상의 이득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어진 마음과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다.

맹자는 천하를 가지려고 한다면 좀 더 큰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혜왕이 맹자에게 노인장이라는 지칭을 사용했다. 이는 맹자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존경의 의미로 부른 명칭이다. 당시 맹자의 나이가 53세이고 혜양은 83세로 알려져 있다. 노령의 왕이 당대의 유능한 학자이자 인재에게 존경을 표한 것이다. 하지만 질문 자체는 가벼웠고 답변은 무거웠다.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패배는 곧 멸망이라는 위기감이 있던 시절 하루라도 빨리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군사력을 확충하고 적을 물리치던가 침략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설 같은 도덕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혜왕 입장에서는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에 맹자는 그의 사상을 직설적으로 설명하며 여기서 나누는 여러 사상이 당시 분권화된 중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치 경제학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면서 위대한 맹자 사상의 진수를 보여 준다.

맹자가 부국강병을 위하여 주장한 것은 호구제, 정전제, 법치주의, 시민 계급을 둔 작제로서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선진적이고 급진적인 제도들이었다.

나라가 부강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농사를 장려해야 한다고 한다. 당시 국적의 개념이 모호한 시기 상업을 통한 국부를 쌓는다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인 처지에서 보면 국가 정체성이나 소속감에 대한 기대가 없어 언제든 나라를 떠날 수 있다. 이에 나라에 힘은 인구이며 인구를 늘리는 데 필요한 것은 경제적 토대인 토지로 사람을 묶어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다음이 농업을 통한 세금의 징수를 설명했으니 이게 정전법이다. 세금은 10분에 1만 징수하고 나머지는 개인이 갖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이를 시행하기 국민을 관리하기 위한 호구제 실시와 법치를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제 농민이 토지에 묶이고 생존을 위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남은 것은 국가가 필요할 때 헌신적으로 나설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를 위하여 맹자는 약 20등급으로 나눈 계급 제도를 만들어 공을 세운 자에게 등급이 올라가게 하여 신분을 보장해 주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정치 경제학적 토대를 만들기 위한 맹자의 사상을 이야기했지만 좀 더 나가면 왕들이 섬뜩해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장수가 군대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수장인 장군의 책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방 관료가 고을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지방 관리의 잘못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답한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백성이 굶어 죽고 고통에 빠진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 질문에 맹자는 가치 없이 왕의 책임이라고 답한다.

이 대목이 바로 역성혁명이라는 왕조시대 최대의 위협적 사상의 시초가 된다. 이로 인하여 일부 중국의 왕조 국가에서 맹자의 사상을 불온시했으며 실재 당시 문답을 나눴던 왕조차 본체만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맹자는 여기에 더 나아가 백성과 함께해야 하고 심지어는 왕보다 백성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자에게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다. 누구나 평등한 것이 아니라 왕은 백성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지금 우리가 갖는 민주적 가치를 이미 오래전 가르치고 계셨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은 성공회가 주최한 맹자 강의에서 맹자가 아니었다면 중국은 지역적으로 분권화된 유럽 형태로 분화되었을 것이며 위대한 맹자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중국이 하나가 되는 정치 사상적 토대를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맹자가 갖는 인본주의적 가치와 사상이 오늘날까지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맹자에 대한 해설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기(주)휴머니스트출판그룹이 발행하고 김원중님이 옮긴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 맹자'라는 책을 읽었다. 2021년 5월 전자책으로도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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